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 59명의 희생과 아픈 역사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라북도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대한민국 철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한국화약(현 한화) 소속 화물열차에 실린 40톤의 폭발물이 폭발하며 순식간에 59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1,343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대형 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당시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과 부패의 상징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이리역 폭발 사고의 전말을 상세히 알아보고, 이 비극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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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역 폭발 사고 개요

구분 내용
발생 일시 1977년 11월 11일 21:15
위치 전라북도 이리시 이리역 (현 익산시 익산역)
사망자 59명 (철도직원 16명 포함)
부상자 1,343명 (중상 185명, 경상 1,158명)
이재민 1,674세대 7,873명
재산 피해 61억 원 (1977년 기준)
폭발물 양 다이너마이트 22톤 포함 총 30톤
폭발 구덩이 직경 30m, 깊이 10-15m

 

💣 사고의 원인: 인재(人災)였던 비극

1. 급행료 갈취와 화물열차 지연

당시 철도법에는 화약류 등 위험물을 실은 열차는 역 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바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리역 직원들은 ‘급행료’라는 명목으로 뇌물을 요구하며 화물열차를 무려 40시간 동안이나 역 내에 대기시켰습니다.

2. 술에 취한 호송원의 치명적 실수

화약 호송 담당자 신무일(당시 36세)은 역 직원들의 갈취 행위에 화가 나 술을 마신 후, 화차 안에서 촛불을 켜고 잠이 들었습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 켜둔 촛불이 화약 상자에 넘어지면서 대폭발로 이어졌습니다.

3. 철저히 무시된 안전 규정

  • 화기 사용 금지 위반
  • 호송원 면허 미비
  • 소화 장비 부재
  • 위험물 동시 운송 금지 위반

“당시 상황은 모든 안전 수칙이 무시된 완벽한 인재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폭발의 충격: 그날의 참상

1. 폭발의 규모

폭발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600분의 1에 달할 정도로 강력했으며:

  • 반경 500m 내 건물 대부분 파괴
  • 반경 4km 내 유리창 파손
  • 폭발음이 30km 떨어진 군산시까지 전해짐
  • 익산군청 건물 균열로 이후 함열읍으로 이전

2. 생존자의 증언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이 무너졌다.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 당시 생존자 인터뷰

3. 기적의 생존 이야기

  • 가수 하춘화: 공연 중이던 삼남극장 무너짐 속에서 개그맨 이주일에게 구조됨
  • 600명의 승객: 김제역에서 통표 분실로 운 좋게 발이 묶여 생존

🏗️ 사고 이후의 파장과 변화

1. 책임자 처벌

  • 신무일: 징역 10년 선고
  • 이리역 직원 2명: 징역 10개월

2. 도시 재개발

박정희 정부는 ‘새이리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 109억 원 투입해 시설 복구
  • 모현주공아파트 건설 (이리시 최초 주공아파트)
  • 도로망 정비 (남북로, 중앙로 등)

3. 제도적 개선

  • 위험물 운송 규정 강화
  • 철도 안전 관리 체계 전면 개편
  • 전국적 위험물 시설 점검 실시

🕊️ 오늘의 익산: 아픔을 딛고 일어선 도시

1. 추모 활동

  • 매년 11월 11일 추모식 개최
  • 익산역 내 추모비 설치 (이전 필요성 제기됨)
  • 2017년 40주기 추모행사 개최

2. 한화그룹의 책임 논란

사고 당사자인 한국화약(현 한화)은:

  • 30주년 행사 때 일부 지원 약속
  • 그러나 지속적인 지원 미비로 비판
  • 추모탑 건립 요청 거절

3. 도시의 변모

폭발 사고는 역설적으로 익산 발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 낙후된 홍등가, 판자촌 정리
  • 산업단지 개발로 지역 경제 활성화
  • 공구거리 형성 등 상업 발전

 

📊 사고 관련 다이어그램

 

사고관련다이어그램이미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502명의 영혼이 외치는 교훈

 

📌 결론: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리역 폭발 사고는 안전 불감증과 부패, 규정 무시가 빚어낸 인재였습니다. 46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 사고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안전은 절대적인 가치여야 합니다.
  2. 규정 준수는 생명을 지키는 기본입니다.
  3. 윤리적 책임은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매년 11월 11일이 되면, 우리는 달콤한 빼빼로데이를 즐기기 전에, 이리역에서 희생된 59명의 영령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하고 투명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익산시와 국가는 이 비극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추모하며, 안전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고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한화그룹은 더 적극적인 사죄와 보상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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